출산율이 낮다며, 여기저기서 출산 장려정책을 남발하는 요즘.
매정한 한국의 모습이 곳곳에 보여 씁쓸하다 못해 분노스럽다.
출산을 하면 돈을 주는 지방자치 단체도 있고, 임신만으로도 정부에서 출산까지의 검진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한창인데, 이런 세태에 어긋나는 역겨운 인심이 있어 분노에 싸여 키보드를
두들기게 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참 웃기는 도시다. 서울시민만 사는 것도 아니고, 수도권 천만 인구가 살다 보니
웃기는 사람의 종류가 많음은 알았지만, 이런 웃긴 일이 일어날 정도로 인심이 역겨울 줄 몰랐다.
사실 내가 말하고 싶은 역겨움은, 수도권에 일부 배려심 없는(!) 소수를 대상으로 한다.
이 이야기는 한번 유산을 경험한 와이프에 출근길에서 시작된다.
누구도 알다시피 지하철에는 노약자석이 있다.
물론 이 노약자석에 그려져 있는 그림도 다들 자주 본 그런 그림이다.
<요게 노약자석이다.첨 보신분 손?>
자세히 안내 그림을 볼까?
[장애인·노약자·임산부 좌석입니다.] 라고 쓰여 있다.
눈에 보이는 노약자, 장애인은 인정하겠는데, 배 안에 애가 있는 임산부는 이해를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분노한다.
노약자석에서 조는 젊은이를 보면 화가 날까?
그 젊은이가 여성이라면 임산부겠지, 내 딸이겠지, 내 며느리겠지, 생각할 순 없는가?
임산부가 아니면 앉을 수 없는 자리도 아니고,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돈 내고 내가 탄 지하철의 자리를 누군가가 훈계하고 누군가가 뭐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다시 와이프의 출근길 얘기로 돌아가서, -아침 출근길- 노약자석에 앉아서,
임신 12주차의 태아를 달래고, 쏟아지는 잠과 울렁거리는 입덪을 참고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어깨를 툭툭 치며, [야! 일어나!] ( 언제 절 보셨나?반말은...-_- ) 하며
도끼눈을 뜬 아줌마(!) 와 만나게 된다.
'임신을 했다고 말할까?' '아니 그냥 참자..'
조용히 일어나니, 늙고 병들어 보이지 않고 동급의 아줌마보다 우량해 보이는
아줌마가 입을 씰룩거리며 자리에 앉는다.
몇 정거장 후 속이 안 좋아 내렸다. 잠시 플랫폼 의자에 기대여 앉아 있다가.
다음 지하철을 탔다. 노약자석이 비어 있었지만, 아까 일이 생각나 앉고 싶진 않다.
이게 한국의 임산부의 현주소다. 이러니 애를 낳으려고 하겠나..
일본은 임산부에게 뱃지를 지급해 사회적으로 배려한다고 한다.
(난 일본 많이 싫어한다. -_-; 하지만, 좋은 건 배워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임산부용 뺏지.이쁘기도 하여라>
대한민국은 세계에 몇 안 되는 여성부 보유(?) 국가다. 이런 뱃지, 국가 예산에서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 이런 뱃지 하나에 몇백원 하지도 않는다. 이런건 정말 돈 안쓰고 생색낼 수 있는 사업이다.)
답답해서 여기저기 검색을 했더니, 지하철에서 수모를 당한 임산부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많기도 하다.
바꿔야 겠다. 내가 이 일에 할 수 있는 능력이 얼마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침묵하는 양심은 양심이 아니라 하지 않았던가.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야지!.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로 조그마한 변화라도 일어나면 나비효과(!) 가 발생할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매정,비정한 도시에, 역겨운 인심.
모르는 사람에게 인심을 쓸만큼 여유가 없어서 일까?
<참 고>
1.
지하철에서 '못 배워 먹은 년'이 되다